"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바라지를 말라.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로다"
- 야고보서 1장 6-8절-
나는 좀처럼 종교적인 영화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 영화는 언제부터 인지 오락을 제공해 주고 머리를 쉬게해주는 단순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많이 접하게 되는 영화도 거의가 다 단순 액션위주, 현란한 그래픽이 동원된, 생각과 사색으로 뇌를 자극해주는 영화보다는, 눈으로 봐서 즐거운 영화만 접하게 된다.
어제는 간만에, 실로 간만에, 좀 헤비한 듯한 영화를 아내와 함께 보았다.
인디영화의 선두주자인 미라맥스가 만든 영화 "의심/Doubt" (2008년 작품)을 별 기대없이 보았다. 영화앞에 뜨는 아카데미 4개부문에 후보로 선정된 영화라는 광고성 문구도 나에게는 별 기대를 못주었다. 유일한 기대감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 Meryl Streep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보게한 유일한 이유였다.
1964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영화는 신부님(Philip Seymour Hoffman 역)의 미사설교로 시작된다. 영화의 주제인 "Doubt"을 신부의 설교를 통해 보는이로 하여금 영화전체의 플럿을 예고함과 동시에 우리가 갖고있는 "의심"에 대해 함께 생각하게 한다.
명문 카톨릭 사립학교인 Saint Nicholas가 무대인 이 영화는 엄격한 규율과 숨막힐 듯한 종교적 요구가 보는이로 하여금 안쓰러울 정도다. 영화는 Meryl Streep을 한치의 너그러움 없는 경직된 수녀이자 학교교장으로 캐스팅을 했는데, 늘 그렇듯이, 그녀의 배역에 몰입하는 연기는 선입관을 갖고 종교영화를 기피하려던 나를 영화 초반부터 모니터 화면에 줄곳 머무르게 했다.
1960년대면, 아직 미국에서 인종적 편견이 심한 시기였는데, 백인위주의 명문 카톨릭 학교에 유일한 유색인종인 흑인학생을 놓고 영화의 스토리는 전개된다. 미사의 복사(Altar Boy)인 이 흑인학생을 각별한 사랑과 애정으로 돌보는 신부와 이를 이상한 관점으로 보기시작하는 학교교장과의 묘한 심리적, 종교적, 사회적 통념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사실, 종종 미국사회에 충격과 실망을 주는 신부와 아동들과의 좋지못한 관계로 인해 이 영화를 보면서도 "뭐 뻔한 스토리겠군!"하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언제쯤 신부가 그 흑인학생에게 애정과 도움을 가장한 못된짓을 할까 하는것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좀 지루한 듯한 영화는 보는이로 하여금 이런 기대감(?)을 들게하면서도, 신부의 고백이 언제쯤 나올까 하는 생각을 들게하고 그래서 그저 그렇고 그런 진부한 각본임을 보는이로 하여금 예상하게끔 한다. 바로, 이 영화의 묘미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갖고있고 믿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획일적이며 좀처럼 변화되기 힘들다는 것을 신부와 교장수녀의 갈등을 빌어 나타낸다. 하나님을 최전방에서 믿는다는, 주님의 종이고자 삶을 약속한 수녀도 자신의 아집과 종교적 믿음이 아닌 세상적 믿음이 얼마나 위험하고 하나님 앞에 죄짓는 일인가를 영화는 중반, 후반부에 들면서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늘 연약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요동을 한다. 믿음 또한 마찬가지다. 내 안에 있는 Belief,,,,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일 수 도, 또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되고 갖게된 세속적 생각, 주관, 고집일 수 도 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얼마만큼 "나"를 버리려는 노력을 할까? 껍데기만 하나님의 자녀임을 스스로 믿으며, 나만 옳고 정당하다는 자아독선, 교만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영화 마지막 부분에 교장수녀의 눈물짓는 고백과 회개로 신부의 결백함은 증명되지만 "의심"은 믿음의 크고 작고를 떠나서 "정함이 없는"마음이란 생각을 다시금 일깨워준 영화였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교장수녀의 끈질긴 모략과 험담으로 인해 사직하기로 결심한 신부님이 전해주는 마지막 설교가 필자가 얼마전 조인스 블러그에 포스팅했던 "깃털"이란 내용이다.
그래서 아래에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깃털은 바람에 날리고 . . .
한 신부님이 젊은 과부 집에 자주 드나들자,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좋지 않는 소문을 퍼뜨리며 신부를 비난했습니다.그런데,얼마 후그 과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신부가 암에 걸린 젊은 과부를기도로 위로하고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두 여인이어느 날 신부를 찾아와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는그들에게 깃털을 한 봉지씩 나눠주며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깃털을 날리고 돌아온 여인들에게신부는 다시 그 깃털을주워 오라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가 버린 깃털을무슨 수로 줍겠느냐며울상을 지었습니다. 그러자,신부는 여인들의 얼굴을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나에게 용서를 구하니 용서 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지 못합니다. 험담을 하는 것은살인보다도 위험한 것이라는말이 있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험담은 한꺼번에 세사람을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깃털을 날리고 돌아온 여인들에게신부는 다시 그 깃털을주워 오라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가 버린 깃털을무슨 수로 줍겠느냐며울상을 지었습니다. 그러자,신부는 여인들의 얼굴을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나에게 용서를 구하니 용서 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지 못합니다. 험담을 하는 것은살인보다도 위험한 것이라는말이 있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험담은 한꺼번에 세사람을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요,
둘째는 그것을 반대하지않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며,
셋째는 그 험담의 화제가되고 있는 사람입니다.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결국 자기 자신의
둘째는 그것을 반대하지않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며,
셋째는 그 험담의 화제가되고 있는 사람입니다.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결국 자기 자신의
부족함만 드러내고 마는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작가: 미상/출처: Web
-HigginK-

댓글 4개:
오늘에야~~~ 덧글 쓰는 곳을 찾았습니다! ㅋㅋ
근제 올리는 게 복잡하네요???
덧글 쓰는 란을 찾았는데...올리는 것도 복잡하네요???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낳는다...
의심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
ㅎㅎㅎ~ 여기까지 찾아주셨스라? 고마워요,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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